졸기
-

저자가 문을 닫은 날, 백성이 운 부고는 몇 건인가
조선왕조실록 졸기 2,179건 가운데 백성이 운 부고는 몇 건일까요. 조정 바깥 사람들의 애도가 적힌 사람은 아홉 명입니다. 도성 백성이 저자를 닫은 서지수 졸기 75자와, 그 장면을 나중에 보충한 서종태 졸기를 읽습니다.
-

이순신 졸기 — 닷새 늦게 도착한 부고
이순신에게는 졸기가 없습니다. 그의 죽음은 닷새 뒤, 명나라 장수가 후임을 정하라며 보낸 말 속에 처음 적혔습니다. 선조실록 사론 376자와 수정실록 249자를 나란히 읽습니다.
-

유자광 졸기 — 사관은 그가 죽기를 기다리지 않았다
유자광 졸기는 실록에 한 건도 없습니다. 그런데 사관은 그가 죽기 열네 해 전에 1,455자를 적어 두었고, 정작 죽음에 관해서는 85자가 쓰였습니다.
-

졸기 10 · 김종직 — 칭찬은 취소하는 문서에만 남았다
김종직 졸기(卒記)는 실록 전체 졸기 가운데 칭찬하는 말이 단 한 마디도 없는 유일한 기록입니다. 그를 기리는 문장은 정작 그것을 지우려는 문서 안에서만 세 번 살아남았습니다. 실록 원문 글자 수로 그 자리를 추적합니다. 이번 편은 김종직…
-

졸기 9 ·김일손 — 여섯 조목을 잘라 올린 날
김일손 졸기는 실록에 없습니다. 대신 그의 사초에서 잘라낸 여섯 조목과, 태우라는 명령을 받은 조의제문 407자가 『연산군일기』 30권에 남았습니다. 지우려는 절차가 사본을 만든 기록입니다.
-

졸기 8 ·이이첨 — 졸기라 부르지 않은 838자
이이첨 졸기는 실록에 없습니다. 그런데 그가 처형된 날의 기사 안에는 838자짜리 인물평이 들어 있습니다. 보름 뒤 같은 죄목으로 죽은 정인홍에게 사관이 쓴 글자는 다섯이었습니다.
-

졸기 7 · 정인홍 — 사관이 미리 써둔 말
영의정을 지낸 정인홍에게는 졸기가 없습니다. 죽음을 적은 문장은 다섯 글자입니다. 그런데 사관은 그가 벼슬길에 나서던 서른여덟 살 자리에 183자를 써두었습니다.
-

조선왕조실록 연재 목차 — 실록을 읽는 세 갈래
조선왕조실록 연재 목차입니다. 41만 건을 읽는 네 갈래, 「졸기」와 시즌 시리즈와 「실록통계청」과 「역사다큐」의 전편을 모았습니다. 각 편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한 줄로 정리했습니다.
-

졸기 6 · 유성룡 — 사관이 직접 하지 않은 말
유성룡 졸기에서 사관 자신의 판단은 다섯 글자뿐입니다. 사위적론야(斯爲的論也). 나머지 평가는 모두 남의 입을 빌렸습니다. 수정실록이 도리어 짧아진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.
-

졸기 5 · 최영경 — 죽음에 붙은 네 가지 표현
『선조실록』에는 최영경의 죽음이 아예 없습니다. 최영경 졸기가 빠진 자리에서 실록은 그의 죽음을 네 가지 다른 말로 부릅니다. 몰(歿)·자진(自盡)·경폐(徑斃)·유사(瘐死)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