선조수정실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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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순신 졸기 — 닷새 늦게 도착한 부고
이순신에게는 졸기가 없습니다. 그의 죽음은 닷새 뒤, 명나라 장수가 후임을 정하라며 보낸 말 속에 처음 적혔습니다. 선조실록 사론 376자와 수정실록 249자를 나란히 읽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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졸기 7 · 정인홍 — 사관이 미리 써둔 말
영의정을 지낸 정인홍에게는 졸기가 없습니다. 죽음을 적은 문장은 다섯 글자입니다. 그런데 사관은 그가 벼슬길에 나서던 서른여덟 살 자리에 183자를 써두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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졸기 6 · 유성룡 — 사관이 직접 하지 않은 말
유성룡 졸기에서 사관 자신의 판단은 다섯 글자뿐입니다. 사위적론야(斯爲的論也). 나머지 평가는 모두 남의 입을 빌렸습니다. 수정실록이 도리어 짧아진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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졸기 5 · 최영경 — 죽음에 붙은 네 가지 표현
『선조실록』에는 최영경의 죽음이 아예 없습니다. 최영경 졸기가 빠진 자리에서 실록은 그의 죽음을 네 가지 다른 말로 부릅니다. 몰(歿)·자진(自盡)·경폐(徑斃)·유사(瘐死)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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졸기 4 · 정철 — 사관이 그에게만 쓴 표현
정철 졸기의 본문은 여덟 글자입니다. 그 안에 들어간 병국권(秉國權)은 실록 41만 건을 통틀어 정확히 한 번 나옵니다. 사관이 그에게만 쓴 말을 원문에서 확인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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졸기 3 · 이황 — 39자, 그리고 1년 어긋난 자리
『선조실록』이 이황의 죽음에 쓴 글자는 39자입니다. 그마저 죽은 해가 아니라 한 해 앞에 놓여 있습니다. 뒷날 다시 쓴 『선조수정실록』의 이황 졸기는 13.5배로 늘어납니다. 두 판본의 거리를 한문 원문 글자수로 헤아립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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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이 졸기 — 아홉 자로 끝난 부고
이이 졸기는 『선조실록』에서 아홉 글자로 끝납니다. 같은 죽음을 적은 『선조수정실록』에서는 916자입니다. 102배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원문을 직접 비교해서 확인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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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— 이순신을 다르게 쓴 두 기록
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은 같은 시대를 다룬 두 기록이다. 뒤에 다시 쓴 선조수정실록은 기사 수가 선조실록의 14분의 1로 줄었는데, 이순신이 나오는 기사 비율은 도리어 두 배로 늘었다.